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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문화생활 기록 및 자랑질

'책'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6.06.19 ㅊㅅㅈㅇㅈ
  2. 2016.06.11 광대 팜팔론
  3. 2016.06.07 고양이는 왜?
  4. 2016.06.06 ㅎㄱㅇ ㅅㅇㅅ
  5. 2016.05.17 ,

ㅊㅅㅈㅇㅈ

2016 / 2016.06.19 01:18

데보라 스미스가 한 눈에 반했다는 말이 이해가 되네요.

와.
정말 좋습니다.

시각적으로 현란하다 못 해 충격적인 작품이네요. 저는 좀 덜 한데, 글을 읽으면서 이미지화를 풍부하게 하시는 분들껜 정말 강렬한 작품 일 것 같아요. 뭐랄까, 뇌가 들쑤셔진 느낌이예요.

세 편의 소설이 연작이라고 하나, 결국 장편소설의 각 장으로 귀결되는군요.
화자의 태도에 따라 다른 색채로 읽히는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첫번째, 채식주의자는 색채로 표현한다면 흑백에 가까운 이미지인데요, 피에 대한 묘사 조차도 선홍색보다는 암적색으로 느껴집니다. 가장 폭력적이고 잔혹한 사건이 일어난 장이고, 온갖 폭력 묘사들이 가득한데도 오히려 담담하게 읽히는 것은 이런 이미지 때문일까요. 영혜 남편의 건조하고 차분한...혹은 무미건조한 캐릭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두번째, 몽고반점. 영혜의 형부. 이 남자의 색깔이야 말로 앞선 채식주의자의 흑백에 가까운 차분한 색이었는데,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푸른 색 몽고반점이 이 남자의 껍질을 벗겨버리죠. 앞서 채식주의자에서 셔츠에 영혜의 암적색 피를 뒤집어쓰고도 굳이 그 셔츠를 버리지 못한 채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장면, 일종의 출산 혹은 알을 깨고 나오는 새, 같은 느낌이었어요.

영혜가 형부의 '색'을 깨버린 것인데, 꽃과 풀의 이미지가 반복되어 제시되면서 원색의 그림들이 머릿속에 마구 펼쳐지는 느낌이었어요. 소화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마구마구. 

여담이지만 2년 전에 타히티로 여행을 갔었는데, 도착하자마자 고갱이 그려댄 그림들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열대의 태양, 그 섬의 색깔들, 그 섬의 풀과 꽃, 그 향기들, 사람들.... 



 그리고 '새의 감각'이란 책을 같이 읽던 중이어서, 옆에 두고 있었는데....자꾸 이 표지 디자인에도 눈이 가더군요. 그만큼 색으로 폭격맞은 듯 한 느낌이었습니다. ㅎㅎㅎㅎ 
  


예술이냐 외설이냐...온라인 서점 한줄평에 이야기가 분분하던데 뭐 솔직히 전 그런거 상관없구요. 저는 창작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창작자의 결과물에 엄청나게 경도되거나, 좋은 작품, 연주 같은 걸 접하고 막 흥분해서 어쩔줄 몰라하기도 하는...사람이라서. 인혜의 남편에게 충분히 공감이 가네요. 물론 현실에서 보면 천하의 나쁜놈이지만, 이미 색채의 폭격을 잔뜩 맞은 마당에 현실을 굳이 대입할 필요가 있을까요. 몽고반점 자체는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 같았어요. 


세번째, 나무불꽃.

 비 내리는 숲의 이미지가 압도적이었어요. 나무불꽃은 '놓아버림'에 대한 것이 아닐까요? 인혜도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나무들이 불꽃처럼 무시무시하게 겁을 주며 쫓아버렸죠. 받아주지 않았어요. 반면 영혜는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겠다고 하죠. 이미 다 놓았는데, 나무가 될 준비가 다 되었는데, 놓아주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죠.
다 짊어져버린 인혜가 안쓰럽고 가엾지만, 꼿꼿하게 버텨내는 것이 안타깝지만, 영혜를 좀 놔주지...싶어서 답답했어요. 저는 왠지모르게 영혜에게 내내 이입이 되었거든요. 영혜는 이미 다 건너가 버렸는데. 인혜가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아니, 알기 때문에 붙잡아 두는 것일까요. 



 마지막 부분이 꽤나 인상적이었네요. 솔개로 추정되는 검은 새. 남편이 작품에 넣었던 무너진다리-장례식 오열장면-새의 검은 그림자로 이어지는 장면과 연결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의 대답은 "그냥 저런 걸 넣게 돼. 넣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였는데 말이죠. 
 나무들은 서로 연결되어서 형제같다고 말하던 동생은 미쳤고, 죽어갑니다. 나무들은 인혜에게 위안을 주긴 커녕 위협을 하고. 인혜는 채식주의자도 아니고요. 그런 와중에 새가 눈에 들어옵니다. 마음이 편해졌을까요? 조금은 위안이 되었을까...아니면 그저 공허하기만 해졌을까...아니면 그냥 가버린 남편을 되새기기만 했을까. 궁금해집니다....만, 마지막 문장에 싸아..한 느낌이 드네요.마지막 문장의 인혜의 시선과, 176페이지에 인혜를 바라보는 환자의 눈빛을 보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결코 타인에게 던질 수 없을 집요한 시선'이라고 묘사한 것과 괜히 연결이 지어지네요. 정신줄...놓지 않고 끝까지 잘 버텨낼까요?

 끝으로...세 개의 작품에서, 영혜는 모두 타인의 시선으로 묘사'당하죠'. 그 누구도 영혜를 이해하지 못 합니다. 그나마 일말의 교감을 나눈 것은 '꽃'을 매개로 한 형부 아닐까 싶네요. 형부와의 정사가 식물로서의 정체성(?)을 깨워줬달까요. 그 둘은 서로를 깨운 존재라고 할 수도 있겠구요. 하지만 결과는 두 사람 모두...파괴하죠. 알껍질을 깨고 나와서도 날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원하는 건 세상이 허용하지 않아요. 

 작품 외적으로는, 채식주의에도 여러 범위가 있는데, 희닉스님 후기에도 남겼지만 영혜는 완전히 vegan(유제품, 달걀, 가죽제품등 동물에서 얻는 모든 것을 먹거나 사용하지 않음)인 것 처럼 묘사되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이 나와서 어리둥절했어요. 병원에서 나와 약간은 회복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기는 안 먹는 걸로 묘사하는데 애매하게 처리된 것 같네요. 장편으로 쭉 이어 진행된 것이 아니고 별개의 소설로 완성이 되어서 그런가...싶습니다만.

 또한, 최근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정신질환자, 특히 조현병 환자의 격리 조치를 강화한다느니 엉뚱하게 정신 질환을 겪는 분들에게 불똥이 튀었는데요, 이 책이 딱히 정신질환자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인혜와 영혜의 경우에 각각 대입해보면 생각할 거리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격리병동. 격리 그 자체도 충분히 필요하며,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회복시키기 위함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숨겨진 폭력, 격리된 공간 안의 강제된 질서...등등요.

 마지막 장을 덮고서 알라딘에 접속해서 한강 작가의 다른 책들을 장바구니에 잔뜩 담아놨습니다. 소년이 온다, 흰을 읽으려고 해요. 초반에 영혜의 외모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마른 몸매에 검은 옷을 입고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인터뷰하던 작가 본인의 모습을 계속 떠올렸는데, 그 안에 이런 힘이 숨어있었구나...싶습니다.
 현대 한국문학을 많이 읽지도 않았지만...접한 작품마다 약간의 뻔한 레파토리나 테마가 있어서 (고단한 삶...어머니들의 희생...운동권...분단...) 괜히 염증을 느꼈는데, 이렇게 시각적으로 충격을 주는 작품을 만나서 자극을 확 받네요.
 한강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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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팜팔론

2016 / 2016.06.11 18:5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069681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가 초기 그리스도교 동방정교(로마 카톨릭을 제외한 현재 터키, 그리스 지역 중심의 기독교회. 현대의 그리스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포함)속의 성자들에 관한 신화, 우화를 소설로 재구성한 중편과 단편을 엮은 소설집입니다. 러시아 문학에 미친 영향이 엄청나지만 러시아 밖에서는 크게 저평가되어있다고 하는데요. 러시아의 토속적 색채를 잘 살린 작품들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광대 팜팔론, 하느님의 마음에 든 나무꾼 이야기, 아름다운 아자, 양심적인 다니엘에 관한 전설, 그리스도인 표도르와 그의 친구 유대인 아브람에 관한 전설 총 5편이 실려있습니다.

이야기들의 배경은 4~5세기 정도로, 그리스도교가 막 공인되고 로마제국의 국교로 정착되어 나가던 시절인데요.  
첫 작품인 광대 팜팔론이 질적이나 기술적으로 가장 좋았습니다. 책 전체 분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데, 있는 자들의 위선과 낮은 자들의 진심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현실을 풍자하고, '진리'를 좇으려는 자들의 마음가짐도 풍자하고, 짦막한 여러개의 장으로 끊어놓은 흐름도 마음에 들고, 중간에 드러나는 작은 반전도 재미있어요.

또 하나, '그리스도인 표도르와 그의 친구 유대인 아브람에 관한 전설'편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반목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이 두 사람도 결국 종교 갈등을 극복하고 우정을 회복하여 서로 사랑하며 산다는 이야기입니다만....뿌리깊은 종교갈등은 몇 세기가 지나도록 여전하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잘은 모르지만, 옛 이야기에 철학적 사상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스콜라 철학)도 약간 녹아 있고요, 구약 성서가 종종 인용되어 있으니, 기독교 (개신교, 카톨릭 전체 포함) 신자분들이 읽으셔도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면서도 꽤 교훈적인 책이니,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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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왜?

2016 / 2016.06.07 21:41

도서관에 앞서 올린 책들 반납하러 갔다가 서가에 보이길래 집어들고 왔는데 짧아서 후다닥 완독.

저희집엔 만으로 13살 반, 10살인 고양이 두 마리가 있어서, 언제나 고양이라는 글씨가 눈에 띄면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노묘 두 마리 모시고 사는 제 입장에선 다 겪은 일이고 다 알고 있는 거지만 그냥 재미삼아 읽었어요.


1장 내 마음을 알고 싶다고요?  
2장 내 행동을 이해하고 싶다구요?
3장 고양이와 처음 사귄다구요?
4장 건강이 최고 아닌가요?
5장 고양이와 해피 투게더!

1~3장은 고양이 심리를 파악하는 요령, 혹은 의사소통의 요령을 알려줍니다. 
4장은 다양한 이상증상을 방대하게 펼쳐놓고 있는데...어쨌든 병원에 가야한다고 한결같이 서술해놨네요. 사실은 그 것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죠. 
5장은 기타 집을 비울 때의 주의 사항, 고양이 산책을 시도하려는 것에 대한 당부, 가정식 준비요령 등 반려인에게 필요한 한단계 높은 정보를 담아두었습니다. 특히 고양이가 이뻐보이게 사진찍는 요령과 블로그 친구 맺기, 혹은 블로그 개설하는 요령까지 알려줘요 ㅋㅋㅋㅋㅋ 역시 내새끼 자랑질이 핵심인 거심미다. 

제가 고양이를 키우니까 '나도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저도 그렇고, 좀 키워본 사람들은 '키우지 마'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털이 겁나게 빠지고요. 상상을 초월하게 빠지는게, 밥에도 들어가고 반찬에도 들어가고 침대에 누우면 베개에도 잔뜩 묻어있고 빨래 걷으면 매번 떼야하고 청소기 돌리면 털 때문에 흡입구가 막히고....해서 저는 청소를 안 합니다. 옷에도 그냥 묻히고 다니고요. (검은 옷은 얼룩덜룩해져요)

2)저는 애들이 열살 넘으면서 연1회정도 건강검진을 하고 스케일링을 하는데 비용이 몇십만원 깨집니다. 아프면요? 그냥 가벼운 질환이 아니라 중증 질환이 오면 수백은 그냥 나가요. 그렇다고 내 가족인데 버릴건가요? 

3)고양이 평균수명은 위에 적었듯 15살입니다. 대부분 중간에 결혼을 했는데 배우자가 알러지가 있어서 다른데 보냈다. 혹은 아이가 생겼는데 위생문제 때문에 다른데 보냈다. 혹은 나는 계속 키우고 싶은데 (키우긴 뭘 키워요 같이 사는거지...라고 말하면 너무 격해보이죠?ㅎㅎㅎ) 집안 어른들 반대가 심하다.는 이유로 끝까지 함께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 나는 왜 책 후기를 쓰는게 아니라 고양이 키우지 말라는 말을 적고 있는가 갑자기 현자타임에 들어가다가 다시 멈추고 나와서 후기로 이어가자면....

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고양이의 평생, 약 15년을 책임져줄 각오가 되어있다면 아마도 가장 처음으로 읽어야 할 기초 서적으로 괜찮아 보이네요. 고양이랑 같이 사는 법에 대한 책들 많이 읽어봤지만, 특히 5장 읽으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개건 고양이건, 집안에 동물을 들인다는 것은 또 하나의 가족을 데려오는 것이어서, 반드시 사전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첫째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름...은근 고생을 하기 마련인데요. 예를 들면 수코양이의 찌찌를 발견하고 종기나 종양인줄알고 혼비백산해서 병원에 갔다가 '이거...젖꼭지니까 걱정마세요'라고 한다던가(....저는 아닙니다.)
특히 개는 그래도 친숙한데 고양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좀 덜 알려진 부분이 많아서, 고양이를 가족으로 원하신다면 미리미리 틈틈히 읽어두면 괜찮을 것 같아요. 짦막한 글들이 107개가 모여있으니까요.



룽딴지 인생샷. 캬. 누구네 고양이들인지 진짜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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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ㄱㅇ ㅅㅇㅅ

2016 / 2016.06.06 21:57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9713793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고백해도 괜찮나 모르겠지만 (응?)
제 국가관과 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골랐어요. 저도 실제 진지하게 해외 취업을 고민했던 적이 있었고요. 
경쟁에 숨 막혀하는 젊은이들...운명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다들 계나 같이 도전 해 보길 원하겠죠. 이 책이 화제가 된 이유는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일을 해낸 주인공에게 독자들 자신의 소망을 투영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가 실제 시민권 획득에 성공한 분과 오랜 시간 인터뷰 하면서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통쾌하기도 하면서 씁쓸합니다.
 이민해서 십 몇년 살다가 그 사회에 완전히 통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한국으로 돌아오시는 분도 실제로 봤고, 교포 1.5세인데 한국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시는 분도 봤고, 호주의 인종차별 문제는 많이 다뤄지지 않았지만 꽤 심각하다고 들려오고요. 
 계나처럼 이민을 간다고 결국 '신분 상승'을 이룰 수는 없거든요.
그저 '저녁이 있는 삶' 혹은 조금 더 '합리적인 사회에서의 삶'을 원한다면 서구 국가로의 이민을 추진 해 볼 수 있겠죠. 계나가 말하는 현금흐름성 행복, 즉 순간의 행복을 추구하기에 이런 사회가 훨씬 유리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국외자라는 신분은 또다른 굴레가 되겠죠. 그리고 막상 성공한 위치가 되니까 도전하지 않고 불평만 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민으로 이뤄낸 새로운 삶도 마냥 만족스럽게 느껴질까요. 

그리고 주인공이 여성이고, 여성주의적 상징이 살짝 덧칠 된 것이 재밌습니다. 생리가 갑자기 왕창 터졌는데 화장실 갈 타이밍을 못 잡아서 피를 쏟으며 국경을 넘는 와중에 받는 킴치 노 킴치? 라는 질문이 (좀 과한 비유일 수 있지만) 시뻘건 거, 피와 김치라는 두 가지가 대비되어서 국경을 넘는 대가로 피를 쏟고, 한국인의 정체성? 상징성을 벗어 던진다는 비유 같기도 해서요. 
그리고 잘 사는 두 명의 청혼을 대차게 거절한게...음...뭐 괜찮긴 한데 좀 작위적인 장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나라에서 흔히 무시하는 동남아인 - 인도네시아인- 친구가 알고보니 갑부집 아들이고. 이 건 그렇다 치고, 옛 남친과 재회해서 결혼 할까 말까 고민하는 건 좀 군더더기 아닐까도 싶고요. 소위 개념녀임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이지 않나 하는...(제가 너무 꼬아서 보나요.) 

마지막에 나오는 제인의 진상질과 계나가 친구들을 씹는(...) 장면을 보면 십년, 이십년이 더 흐른 계나의 삶이 어떻게 될지 나름의 열린 결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히 계나의 시민권 취득을 해피엔딩으로만 오독 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맨 뒤에 해설에서 '그렇지 않다'고 못을 박는군요. ㅋㅋㅋㅋ

하지만, 열린 결말이니까! (정색)






p11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맨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 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p12
입국 심사대 앞에 서 있을 때 생리가 터졌어. 줄 선 시간이 아까워서 화장실에 갈까 말까 조금 망설였는데, 사실 망설일 상황이 아니었어. 생굴 같은 게 막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었어. (중략...) 별수 없이 피에 젖은 팬티를 입은 채로 세관 통과. 나씽 투 디클레어라는 표현을 입으로 되뇌며 걸어갔는데 세관원은 내 가방을 가리키며 이렇게만 묻더라.
"킴치 노 킴치?"

p17
여자들더러 아이 많이 낳으라는 사람들은 출근 시간에 지하철 2호선 한번 타 봐야 해. 신도림에서 사당까지 몇 번 다녀 보면 그놈의 저출산 이야기가 아주 쏙 들어갈 텐데. 그런데 그런 소리 하는 인간들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지 않겠지. 
 

p68 (유독 연하남들과 사귀게 되는 이유에 대해)
한국 남자들이 워낙 자존심이 세잖아. 그 자존심 때문에 더 쉽게 무너진다? 영어를 가르치는 백인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어린애 다루듯 해. 외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 한국 사람들도 한국에 있는 동남아 사람들을 어린애 취급하잖아. 그런데 상대가 일부러 눈을 크게 뜨고 천천히 쉬운 말을 써 주면 그게 배려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능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야. 유독 한국 남자애들이 그런 무력감을 견디지 못하더라고. 자꾸 말을 시키는 강사한테 "아이 돈 노! 아이 세드 아이 돈 노!"라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아이도 봤어.
 
 
p159
"너는 왜 매일 퇴근이 늦냐, 평생 그렇게 야근을 해야하는 거냐?"하고 따지니까 걔가 이렇게 대답하더라고.
"다들 이렇게 살아. 다른 회사도 그래. 요즘 저녁 시간 전에 퇴근하는 사람이 학교 선생 말고 누가 있냐? 너도 취직하면 알 거야."
"호주에선 안 그래."
내가 반박했지.
"호주에서도 그럴걸. 너도 호주에서 제대로 된 사무직 일은 해 본 적 없잖아. 호주에서도 기업 임원이나, 펀드매니저나, 변호사, 의사 같은 사람은 정신없이 바쁠걸?"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기자나 기업 임원이나 펀드매니저나 변호사, 의사같은 '진짜 직업'들이 있고, 그 아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다른 직업들이 있다는 거지. 내가 직장에 다니더라도 그게 토플 문제지나 조선 업체 정보지를 만드는 일이라면 지명이는 아마 그걸 '진짜 직접'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냥 살림하는 여자인 거지. 그런 건 싫어.

p170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지켜 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p171
나도 알아. 호주가 무슨 천사들이 모여 사는 나라는 아니야. 전에 한번은 트레인에서 어떤 부랑자가 나한테 오더니 "너희 나라로 돌아가."하고 소리를 지르더라 (중략) 애국가 가사 알지? 거기서 뭐라고 해? 하느님이 보우하는건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야. 만세를 누리는 것도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고. 나는 그 나라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야. 호주 국가는 안 그래. 호주 국가는 "호주 사람들이여, 기뻐하세요. 우리들은 젋고 자유로우니까요."라고 시작해. 

p184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중략)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그게 엘리야. 걔는 정말 순간순간을 살았지. (중략) 나는 지명이도 아니고 엘리도 아니야.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 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 나라 사람들 평균 수준의 행복 현금흐름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 끼만 먹고 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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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2016.05.17 01:38
한국소설 오랜만에 읽었는데 쾌속질주. 다 읽는데 4시간?
김영하 작가 문체가 워낙 간결하고 전개도 깔끔해서 속독 그 자체, 텍스트를 빠르게 소화하는 것에서 오는 쾌감도 컸다.
검은꽃 읽었을 때도 정말 반했는데 이제는 팬이라고 자칭해도 괜찮을 듯.

영어책을 읽는 것엔 학습이란 그림자가 드리워져서 아무래도 부담이 있고, 번역서는 완전한 우리말이 아니라서 약간의 이질감이 남아 있고, 한국소설도 안 맞는 것은 정말 괴롭고 읽기 고되지만 이번에 읽은 김영하 작품들은 정말로 쾌.속.질.주.
재미과 속독의 쾌감을 다 얻었다.
다른 작품들도 싹 다 찾아 읽어야지.

...그리고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간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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